The story
안녕하세요, 정독도서관 정원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의 산책길을 안내할 가이드 아브샤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북촌의 번잡한 골목을 지나, 마치 다른 세상으로 들어온 듯 고요하고 평화로운 초록빛 공간에 서 계십니다.
먼저 고개를 들어 정면의 하얀 건물을 바라보세요. 맑은 하늘과 대비되는 저 하얀 외벽과 단정한 창문들, 어딘가 고풍스럽지 않나요? 이곳은 원래 1927년에 지어진 옛 휘문고등학교 건물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 근대 건축의 양식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지금은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죠. 1970년대에 학교가 강남으로 이전하면서, 지금처럼 시민들을 위한 지식의 전당인 정독도서관으로 재탄생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땅의 이야기는 더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조선 시대 이곳은 왕실 가족의 계보를 관리하던 ‘종친부’가 있던 자리였습니다. 또한 구한말에는 박규수, 김옥균과 같은 개화파 지식인들이 모여 앉아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토론을 벌이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했죠.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정원 한쪽에 세워진 ‘겸재 정선 생가터’ 비석을 발견하실 수 있을 텐데, 인왕산의 풍경을 화폭에 담았던 거장의 숨결이 바로 이 근처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으신가요?
이제 정원 안쪽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 볼까요? 정독도서관 정원은 서울에서 손꼽히는 ‘벚꽃 명소’입니다. 봄이면 수령이 오래된 벚나무들이 연분홍 꽃터널을 만들어내고, 바람이 불 때마다 꽃비가 내리는 장관을 연출하죠.
여름이면 보랏빛 등나무 꽃 아래 벤치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보입니다. 가을에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정원 전체를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겨울의 눈 덮인 정원은 더없이 적막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잠시 벤치에 앉아 쉬어가셔도 좋습니다.
멀리 남산타워가 보이는 탁 트인 시야를 즐기며, 책장을 넘기는 소리와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삼청동의 트렌디한 카페와 한옥 마을의 소란함이 아주 멀게만 느껴질 것입니다. 이곳 정독도서관 정원은 단순히 도서관의 부속 공간이 아니라, 서울이라는 바쁜 도시가 숨을 고르는 거대한 허파와도 같습니다.
과거의 역사가 켜켜이 쌓인 이 땅 위에서, 여러분만의 여유로운 시간을 충분히 만끽해 보시기 바랍니다. 충분히 쉬셨다면, 이제 다시 도서관 본관의 붉은 벽돌과 정원의 초록이 어우러진 풍경을 눈에 담으며 다음 목적지로 발걸음을 옮겨볼까요? 여러분의 오늘 산책이 이곳의 나무들처럼 늘 푸르고 평온하기를 바랍니다.